우리 모두의 성장통, '데미안'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싱클레어' 라는 가명으로 출간한 책으로, 당시 문단에서 이미 대문호로 불린 그가
자신의 작품만으로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하여 비밀스러운 시도를 한 책이다.
그의 기대처럼 이 작품은 싱클레어라는 신인 작가가 출판한 책으로 소개되었고 이 책은 세상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다. 소설가 토마스 만이 <데미안>을 출간한 출판사에 '에밀 싱클레어' 가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간청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결국 한 평론가의 문체 분석을 통해 이 책의 실제 저자는 헤르만 헤세인 것이 밝혀지게 되고, 헤르만 헤세의 이름으로
다시 출판하게 된다.
<데미안>은 세계대전을 2번 겪은 수 많은 젊은 청년들이 맹목적인 이유로 희생되고 파괴되는 현실과 내면의 자아에 대한 고뇌를
함께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데미안의 서문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을 한다.
'난 진정,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모든 주제가 이 서문에 나타난 문장으로 함축되었다고 느껴졌다.
내 안에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이며, 우리는 매일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살아간다.
내 안에 있는 것이 나를 규정하고 증명하는 것이겠지만, 정작 내 안의 나는 누구인지 알지 못하며 살아갈 때가 많은 것이 현실이 아닐까?
좋지 않은 나, 좋은 나, 이것을 데미안에서는 '두 세계' 로 표현하고 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신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싱클레어의 삶은 프란츠 크로머에게 한 거짓말로 인해서 어두운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어둠의 세계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어린 싱클레어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부모님도 누나들도, 신도, 학교도 어둠의 세계에서 그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싱클레어는 누구의 문제도 아닌, 온전히 자신의 문제를 가지게 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간직해두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내가 감명받은 문장들을 간단히 소개하고 싶다.
'저마다 삶은 자아를 향해 가는 길이며, 그 길을 추구해 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고자 끊임없이 추구하는 좁은 길을 암시한다.'
'구원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왔다.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내 삶 속으로 들어왔는데 그것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별들이 내 앞에서 명멸해 갔고 잊어버린 유년시절의, 아니, 존재 이전의 시기와
생성의 초기적 단계에까지 이르는 추억이 나의 곁으로 흘러내려 나를 밀치고 스쳐갔다'
'우리의 사명은 이 세계에 한 개의 섬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이상에 불과할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살아가는 방식 가운데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임은 틀림없었다'
'나는 순순히 눈을 감았다. 그치지 않고 쉴 새 없이 피가 조금씩 흐르는 내 입술 위에
그가 가볍게 입맞추는 것을 느꼈다. 그 후 나는 잠이 들었다'
데미안은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쳤던 당시의 젊은이들을 향한 글이었겠지만
약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울림을 주고 있다.
우리 모두는 싱클레이어이고, 데미안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분명 어둠의 세계와 밝은 세계가 공존하고 있으며
진정한 나 자신을 향해서 매일 걸어가고 있다.
데미안이 어려운 책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처음 읽었을 때의 혼란스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처음 읽었을 때 놓쳤던 부분들이 다시 보이게 되었고,
아직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싱클레어의 마음과 데미안의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아마도 평생을 두고 읽어도 읽을 때 마다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확신한다.
오늘도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있는 이 세상의 모든 싱클레어와 데미안들,
이 땅에 다시는 비극이 없어졌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