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비밀정원

매혹적인 아름다움, 진주 귀고리 소녀

모네그라미 2018. 4. 13. 18:59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어느 가을날 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대신에 집에서 자율적으로 공부를 했던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집에 가는 길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큰 서점이 있기 때문에 나는 종종 그 곳에 들려서 책을 보곤 했었고, 그 날도 여러가지 책을 둘러보던 중

이 책을 처음 보게 되었다. 진주 귀고리 소녀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책의 표지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아버렸다.


매혹적인 소녀의 눈빛과 붉게 빛나는 촉촉한 입술, 영롱한 진주 귀고리

그리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소녀의 눈, 그러한 모든 것이 나의 온 정신을 매혹시켰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책을 펼쳐보았고, 곧바로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어느 한 소녀가 부엌에서 야채를 다듬는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그 소녀는 낯선 손님들의 방문을 받게 되고, 그 손님들은 곧 자기가 앞으로 일하게 될 집의 주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녀가 일을 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고 집 안의 생계를 이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주인 내외가 방문을 하며 소녀에 대해서 관찰을 하게 되고, 남자 주인인 베르메르는 그녀가 썰어놓은 야채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게 된다.

색깔별로 분리한 그녀의 야채들을 보면서 소녀와 베르메르는 서로에 대해서 강한 첫인상을 갖는다.

베르메르는 화가이다. 그리고 소녀가 하게 되는 일은 화가인 베르메르의 화실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그는 화실을 매우 중요한 공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 이외에 어느 누구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청소할 누군가가 있어야 했기에

소녀가 그 일을 맡는다. 

화실에 처음 들어가게 된 소녀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무엇인가 다른 세상에 온 것과 같은 아름답고 신성한 그 무언가에 압도된다.

집안의 어려움과 아버지의 사고, 집을 떠나 도제살이를 하는 남동생, 그리고 홀로 남겨진 여동생, 그렇게 소녀는 어깨가 무거웠으나

베르메르의 화실은 그녀에게 있어서 안식처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소녀를 바라보며 화가는 새로운 활력과 예술적인 영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그림과 화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서로 교감해나간다. 그들의 예술적인 교감은 점점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으로 발전한다.



주인과 하녀, 그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하지만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와 그림으로 사업을 하는 장모 사이에서

그는 유일하게 자신의 그림을 이해해주는 소녀에게 마음이 기울어져 간다. 그들은 주인과 하녀의 신분이었지만 때로는 예술적 동지로, 

그리고 스승과 제자로 그들의 관계는 점점 발전한다.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마음을 숨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곁에 두고 싶은 마음,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점점 집 안에서 감시의 대상이 되어가고 사람들에게도 오르내리는 상황이 되어

그들은 애틋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나 화가의 후원자를 위한 그림을 위해서 소녀가 모델이 되고 그들은 화가와 모델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 만큼은 그를 바라볼 수 있고 그와 함께 할 수 있다.

그 시간동안 서로의 눈빛이 교차하고 교감하면서 그들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숨길 수 없게 된다. 그림을 위해 소녀의 귀에 진주 귀고리를 걸어주던

화가의 손은 소녀의 뺨과 입술을 훝고 그녀의 목덜미까지 내려오게 된다. 그렇지만 더 이상의 선은 넘지 않고 그림은 완성된다.

아내에 의해 쫓겨난 소녀,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화가가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이 자신의 그림이었음을 알게 되고

화가가 자신을 사랑했음을 깨닫게 된다.


책에 나온 아름다운 문장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이젤 옆에 앉았다. 하지만 팔레트, 칼, 나이프, 그 어느 것도 집지 않았다. 그저 앉아서 무릎 위에 손을 놓고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가 이렇게 골똘히 나를 쳐다보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나는 뭔가 다른 것을 생각하려고 애썼다. 창 밖을 내다보니 운하를 따라 움직이는 배가 보였다. 장대로 배를 밀고 있는 남자는 내가 여기서 일한

첫 날, 물 항아리를 건져준 그 남자였다. 그날 아침 이후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는가 생각했다. 그때는 그의 그림들 중 어느 하나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의 그림 속에 서 있는 것이다."


"눈을 감아보렴"

나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손에 닿은 창틀과 물주전자의 손잡이가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등 뒤에 있는 벽과 왼쪽에 있는 탁자, 그리고 창문으로부터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를 느꼈다.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느끼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느끼며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몸 전체로 아는 것이다.

"좋아, 바로 그거야. 고맙다, 그리트. 이제 청소를 계속해도 좋아"


그의 손이 내 손 위에 놓였다. 손이 닿는 순간 놀란 나는 그만 막자를 놓쳤고, 막자는 탁자 위를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숙여 막자를 집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막자를 사발 모양의 우묵한 부분에 넣으면서 나는 더듬거렸다. 그는 다시 내게 닿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그와 함꼐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 가끔 우리는 작은 다락방에 나란히 서서, 내가 백연을 갈고 있는 동안

그는 청금석을 씻고나 황토를 불에 구웠다.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나 역시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창으로 쏟아지는 빛 속에서 흐르던 그 시간들은 평화로웠다. 일을 끝내면 우리는 서로의 손에 주전자로 물을 부어주면서 손을 씻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추위가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그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의 눈동자가 나의 눈과 얽혔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그의 잿빛 눈동자가 굴 껍질의 속처럼 참 아름답다는 생각 외에는"


"그리트, 나를 보고 있지 않구나.

할 수 없이 시선을 그의 눈으로 가져갔다. 또다시 불에 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나는 견뎌냈다. 그가 원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이제 내게로 향해 있었다. 그가 나를 보고 있다. 서로를 응시하는 동안 한줄기 뜨거움이 파문을 일으키며

내 몸을 관통했다. 나는 그의 눈을 계속 들여다보았고, 마침내 그는 시선을 거두며 헛기침을 했다.

"오늘은 이것으로 그만하자, 그리트. 다락방에 갈아야 할 뼈들이 좀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빠져나가는 내 가슴은 무섭게 뛰고 있었다. 그가 나를 그리고 있다.



그는 나이프를 탁탁 털어서 천으로 닦았다. 

"자, 그럼 시작하자. 턱을 약간 아래로."

그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입술을 적셔라, 그리트"

나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입을 조금 벌리고"

뜻밖의 주문에 너무 놀라, 내 입은 저절로 살짝 벌어졌다.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나는 눈을 깜박거려야 했다.

정숙한 여인은 그림 속에서 결코 입을 벌리는 법이 없었다.

피터와 내가 골목길에 있었을 때 마치 그도 거기 있었던 것 같았다.

당신은 나를 파멸시키고 있어요. 나는 다시 입술을 적셨다.



"내 의자로 그가 걸어왔다. 턱 선이 죄어들어 오면서 나는 가까스로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부드럽게

내 귓볼을 어루만졌다. 숨이 막혔다. 마치 물 속에서 숨을 멈추고 있는 것 같았다. 

엄지와 검지로 부풀어오른 내 귀를 문지르던 그가 귓볼을 팽팽히 당겼다.

다른 한 손으로는 귀고리의 고리를 잡고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불에 덴 것 같은 아픔이 지나가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턱과 목을 쓸어 내리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얼굴 선을 따라 뺨으로 왔을 때 눈물이 넘쳐흘러 그의 엄지 손가락을 타고 넘어갔다. 

그는 엄지로 내 아래쪽 입술을 만졌다. 나는 그의 손가락을 핥았다. 소금 맛이 났다."


이제 내게는 설명할 수 없는 오 길더가 더 있는 셈이었다. 나는 동전 다섯개를 빼내 손바닥 안에 꽉 쥐었다.

피터와 아이들이 볼 수 없는 곳에 숨겨두리라. 오직 나만이 아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그런 장소에




이 책의 결말까지 이야기를 했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소개를 할 수 없기에 언급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은 화가와 소녀의 플라토닉한 사랑이야기이며 정신적인 교감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내용이다.

소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사실 화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하게 묘사가 된 것은 아니다. 

소녀를 사랑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저 자신의 그림을 위한 예술적인 영감을 주는 존재로만 인식을 하는 것 같은 그들의 관계는

이야기의 결말에 가서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북구의 모나리자로 유명한 진주 귀고리 소녀는 네덜란드 화가인 요한 베르메르의 작품이며,

네덜란드는 이 그림을 너무나 아껴서 베르메르의 다른 그림들은 해외 전시회에 출품을 하지만 이 그림만큼은

네덜란드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 없다고 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실화는 아니며 이 그림을 본 작가가 영감을 얻게 되어 그림을 토대로 구성해낸 허구의 이야기이다.

베르메르 그림 속 소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실제로 베르메르와 모델인 소녀와의 관계는

아마도 서로 사랑했던 관계였을 것이다라는 추측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소녀에 대한 정보도 없고, 실존 여부도 확실하지 않았기에 상상을 통해서 소설을 쓰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이 그림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매혹적인 소녀의 모습이 잔상으로 남았고 그것이 작가의 인생을 지속적으로

지배했었다고 한다.


책 속에 나타난 소녀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가슴이 턱 하고 숨막혀올 때가 있었다. 

화가에 대한 소녀의 마음, 그리고 책의 전반에 나타난 정적인 분위기, 난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소녀의 영특함은

내가 동경하고 부러워하게 된 그 무엇이었다.

숨막히게 아름다운 그들의 이야기는 나를 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했고, 매일 나의 발걸음을 서점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의 감격과 설레임, 아련함, 그리고 안타까움. 그러한 모든 감정들이 나를 사로잡아서 

한 동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것만큼 안타까운 것이 또 있을까?

그의 눈을 바라보고 싶지만 바라볼 수 없고, 그의 뺨을 만져보고자 해도 만질 수 없는 것.

생각만해도 가슴이 아프고 숨이 막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리움을 죽을 때까지 가슴 한 켠에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어쩌면 소녀는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기 위해서 이전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할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서로 사랑했던 순간은 그림이라는 결실을 통해서 영원한 것이 되었다.

어쩌면 그들이 사랑했던 순간은 찰나의 짧은 시간이었을지 모르나 그 아름다운 순간은 그림으로 박제되어 영원한 감동을 준다.

이 소설을 읽고 책의 표지를 다시 보니 소녀의 매혹적인 눈빛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소녀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무엇인가를 갈구하던 소녀의 눈빛, 촉촉하게 살짝 벌어진 입술, 그리고 홍조를 띤 뺨 등

그것은 사랑을 갈망하던 소녀의 표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매혹시킨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이러한 매혹적인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해준 책이기에 이 책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서점 한 쪽 구석에 앉아서 숨을 꿀꺽 삼키면서 한 장, 한 장 넘겼던 그 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신분의 차이, 그리고 스승과 제자, 화가와 모델이라는 한계로 이루어질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이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예술적인 영감을 불러일으켰던 그 순간은 영원한 것이었다.

그렇게 교감했기에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된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인생을 지배하고, 영혼을 사로잡는 나만의 책을 만나시기를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순간이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남겨질 수 있기를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