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허상, 672일째 밤의 동화
672일째 밤의 동화는 '어느 사랑의 실험' 이라는 책의 단편소설이다. 이 책은 독일 단편소설 문학모음집으로써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은
독일 단편소설들을 모아서 번역하여 출간한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 한 작품인 672일째 밤의 동화는 '후고 폰 호프만스탈' 이라는 천재작가의 작품이다. 당시 19세기 말의 시대적 상황과 어우려져
세기말의 우울하고 불안한 당시의 사회를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지극히 추상적인 문체로 이루어져 있어서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의도가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을 알아야 하고, 작가의 사상과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를 이해해야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은 독자가 공감하기 쉬운 책이 아니며, 명쾌한 해설이 없기로 악명이 높다고 한다.
그 만큼 독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고 불친절한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작품이 쓰여진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빈 모더니즘과 유미주의, 유아론적 사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빈 모더니즘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네이버 지식백과의 정보에 의하면, 19세기 말로써 20세기로 다가서는 문턱에서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에서는 야릇한 분위기가 돌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탄생하였고, 근대 지성계를 뒤흔들었으며, 아놀드 쇤베르트의 근대 음악 이론과
아돌프 로오스와 오토 바그너의 근대 건축양식이 등장하고 문학과 비판적 언론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세기말 빈" 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 시기는 곳곳에서 지적 창조적 에너지가 표출되었고, 세기말 특유의 종말적 비관주의와 새시대에 대한
이상주의가 공존하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유미주의란, 탐미주의라고도 하며 넓은 의미에서의 유미주의는 미적 향수 및 미적 형성에 최고 가치관을 두는 인생관과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상을 뜻한다.
그리고 유아론적 사고란, 타자가 배제된 일반 담론을 의미한다. 즉, 세상의 중심을 나로 설정하며, 타인의 존재와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어려운 용어들이지만 이 책이 빈 모더니즘의 시대적 상황에서 유미주의와 유아론적 사고에 의해서 씌여진 책이기 때문에 이 용어들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주인공은 '상인의 아들' 이다. 그의 양친은 모두 돌아가셨고 이제 25살이 된 청년이다. 그는 인생에 대한
환멸로 인해서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자기 집에서만 생활한다. 대신에 자신의 집에 있는 가재도구나 물건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아름다운 여성에게도 성적인 욕망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다. 오직, 아름다움만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그가 생각하는 죽음은 두려운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게 있어서 화려하고 대단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는 고독한 생활을 하자 하지만 자신을 돌봐주는 네 명의 하인이 언제나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에게는 죽음을 느끼게 해주는 노파 하인과 자신의 필요를 완벽히 충족시켜주는 남자하인, 그리고 노파의 친척인 어린 소녀, 그리고 어린 소녀보다
몇 살 위인 또 다른 소녀가 있다. 몇 살 위의 소녀는 주인공에게 있어서 묘한 감정을 일으키고 에로스적인 대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충직한 남자하인을 모함하는 발신자 없는 편지를 받게 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도시를 향하게 되는데, 거기서 그는 정처없이 길을
잃게 된다. 길을 잃게 된 이유는 그가 도시를 거닐다가 하인들을 연상시키는 흔적을 발견하게 되고 정처없이 이끌리다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작품에 나온 문장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친구들한테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에게도 호감을 느끼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가까이 있는 것조처 견디지 못했다. "
"그러면서도 사람을 기피하지는 않아, 곧잘 거리로 나가거나 공원에서 산책을 하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했다. 몸단장을 소흘히하지도 않아서
잘생긴 손에도 신경을 썼고, 집안 장식에도 신경을 썼다. 아름다운 양탄자와 비단 등의 옷감, 목각으로 장식되고 양탄자가 걸려 있는 벽, 샹들리에와
금속제 식기류, 유리 혹은 자기로 된 술잔 등을 더없이 소중하게 여겼다."
"이 소녀는 멀리서 보아서는, 마치 어른거리는 횃불의 조명을 받는 무희의 얼굴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듯이, 특별히 아름답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눈썹과 매력적인 입술이 매일 가까이서 소녀를 보는 주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멋진 몸이 감정 없이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 세계의 감추어진 신비를 표현하는 불가사의한 언어를 접하는 것만 같았다."
"그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또다른 거울에 검은 머리의 청동제 여신상을 양손에 들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비쳤다. 그 순간 그 소녀가 풍기는 매력의
대부분은 나이 어린 여왕의 자태를 연상시키는 몸매의 아름다움, 다시 말해 어린아이처럼 공손한 우아함을 드러내는 어깨며 목덜미에 있다는 걸
얼핏 깨달았다. 소녀의 목덜미에 얇은 금목걸이를 여러 겹으로 매어주면 근사하겠다는 생각도 얼핏 스쳤다."
"그 순간 말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 볼썽사납게 귀가 머리 뒤쪽에 달려 있었고, 눈 위에서 못생긴 머리 위쪽으로 비스듬하게
흰 줄이 나 있었기 때문에 눈알을 부라리는 꼴이 한층 더 사악하고 사나워 보였다. 이 추악한 몰골을 보자 상인의 아들은 오랫동안 앚고 있었던
한 인간의 얼굴이 번개처럼 뇌리에 스쳐갔다."
"그는 너무나 쓰라린 심정으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이 좋아했던 모든 것을 부정했다. 그는 자신의 때이른 죽음을 너무나 증오했기에
자신을 여기까지 끌고 온 자기 인생 자체도 증오했다."
당시 빈 문단에서 추구했던 유미주의, 즉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문학들이 등장을 했는데, 이 책은 거기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맹목적인 아름다움의 추구는 결국에는 죽음을 가져온다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원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죽임에 대한 동경과 아름다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도시라는 현실 세계에 들어섰을 때
죽음의 공포는 그에게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가 아름답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그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오늘날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물론 당시 세기말적인 분위기에 의해서 씌여졌지만 오늘날 시대에 적용해서 새롭게 해석을 해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을 한다.
문학은 문학 그 자체로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게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이 책은 아름다움의 종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아름다움, 맹목적으로 아름다움만을 쫓고 결국에는 그 아름다움으로 우리 자신 스스로를 가두는 것.
모든 매체, 인터넷, 텔레비전, 스마트폰, 그 어느 때보다도 수 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에 반해서 매체를 통해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접하게 하게 되고 우리는 그들을 추종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엔 그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나를 그들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은 갈망으로 이어지게 되고 끊임없는 추구로 인해서 나 자신은 점점 사라져간다.
이것이 이 책을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했을 때의 새롭게 해석 될 수 있는 방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아름다움만을 추구한다면 길을 잃을 수 있으며 길을 잃은 인간은 죽음으로 향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672일째 밤의 동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지 않을까?
오늘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는 밤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