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만지는 손이 불에 데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
기억을 꺼내다가 그 불에 데지 않는다면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가'
흔히 사랑은 불이라고 표현을 한다. 그 만큼 사랑과 불은 그 속성이 매우 닮았기 때문에 자주 비유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옛날에 불새라는 드라마에서 에릭이 했던 명대사가 생각이 난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나요? 내 가슴이 타고 있잖아요"
멋있게만 들렸던 그 대사가 지금 생각하면 약간 오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사가 오글거리는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진정 사랑을 하는 순간에는 불처럼 타들어가는 나의 마음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런지..
사랑은 우리를 기쁘고 환희에 넘치게도 하지만 까맣게 내 가슴을 태울 수 있는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사랑에 데인 우리의 가슴은
사랑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나무가 자신의 삶을 나이테로 남기는 것처럼 우리가 성장해가는 삶의 순간들 속에서 사랑의 기억들도 켜켜이 쌓여간다.
지나간 사랑의 기억들.. 그리고 그 사랑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가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존재는 사랑의 결실로 태어났다. 부모님께서 서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고, 그 사랑으로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다.
형제와 자매, 그리고 친구들, 그 외의 만남들
그 순간 속에서 우리는 울고 웃으면서 서로를 알아가게 되고 사랑을 배우게 된다.
어느 누구도 사랑에 대해서 전부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 사랑을 알고 있다.
이미 사랑은 우리의 가슴 속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시집 속에 있는 아름다운 시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어머니
시가 될 첫 음절, 첫 단어를
당신에게서 배웠다
감자의 아린 맛과
무의 밑동에서 묻은 몽고반점의 위치와
탱자나무 가시로 다슬기를 뽑아 먹는 기술을
그리고 갓난아기일 때부터
울음을 멈추기 위해 미소 짓는 법을
내 한 손이 다른 한 손을 맞잡으면
기도가 된다는 것을
당신은 내게 봄 날씨처럼 변덕 많은 육체와
찔레꽃의 예민한 신경을 주었지만
강낭콩처럼 가난을 견디는 법과
서리를 녹이는 말들
질경이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내 시는 아직도
어린 시절 집 뒤에 일군 당신의 텃밭에서 온다.
때로 우수에 잠겨 당신이 바라보던 무꽃에서 오고
비만 오면 쓰러져 운다면서
당신이 일으켜 세우던 해바라기에서 오고
내가 집을 떠날 때
당신의 눈이 던지던 슬픔의 그물에서 온다.
당신은 날개를 준 것만이 아니라
채색된 날개를 주었다.
더 아름답게 날 수 있도록
하지만 당신의 경사진 이마에
나는 아무것도 경작할 수 없다
삶이 파 놓은 깊은 이랑에
이미 허무의 작물이 자라고 있기에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약한 육신을 주었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함도 함께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는 손을 알려주셨다. 그가 날 수 있는 날개만 준 분이 아닌 아름답게 날 수 있도록
채색된 날개를 주신 분, 그 분이 바로 어머니 라는 위대한 이름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사랑했기에 모든 것을 줄 수 있었다. 그의 시는 이러한 어머니의 영향 아래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바로 어머니의 텃밭에서 시작된 것임을
그녀의 텃밭은 시인의 입을 빌려 시의 원초적인 고향으로 탈바꿈된다.
무꽃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은 우수에 잠긴 눈이 되고, 그녀가 일으킨 해바라기가 된다.
그리고 그녀를 슬프게 한 눈은 바로 시인이 집을 떠날 때였음을 알게 한다.
그의 시 속에서 어머니는 생생하게 살아있고, 모든 자연은 생동하며 움직인다.
자연은 그의 마음 속에서 살아나 시로 재탄생 된다.
모란의 시
어느 생에선가 내가
몇 번이나
당신 집 앞까지 가갔다가 그냥 돌아선 것을
이 모란이 안다
겹겹의 꽃잎마다 머뭇거림이
머물러 있다
당신은 본 적 없겠지만
가끔 내 심장은 바닥에 떨어진
모란의 붉은 잎이다
돌 위에 흩어져서도 사흘은 더
눈이 아픈
우리 둘만이 아는 봄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소란으로부터
멀리 있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당신으로 인해 스무 날하고도 몇 날
불탄 적이 있다는 것을
이 모란이 안다
불면의 불로 봄과 작별했다는 것을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지새웠던 불면의 밤들, 그 모든 밤들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그런 나를 지켜본 모란은 알고 있다.
그는 모르지만 그를 생각하고 사랑했던 그 시간들은 흔적을 남긴다.
그를 생각하며 지나쳐온 가로등 불빛, 길거리의 자동차들, 가로수,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 이 모든 것들은 그런 나를 안다.
사랑 때문에 울고 웃었던 나를, 그리고 혼자 울고 있을 때, 그 눈물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그런 나를 위로해주었음을
그들은 전부 알고 있다.
이런 나의 순간도 빛나게 될 날이 올 것을 믿는다. 어쩌면 지금은 사랑의 조연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멀지 않은 순간에
나도 당당한 사랑의 주연이 될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나만을 한결같이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그 사랑 속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배우게 될 것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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