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일까? 누구나 사랑을 해본적이 있다. 그것이 연인간의 사랑이든, 가족과 친구간의 우정과 같은 사랑이든지,

아니면 홀로 사랑하는 짝사랑과 같은, 혹은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사랑들 말이다.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사랑의 종류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사랑을 갈망하고 원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찰나의 미세한 떨림' 이다.

어쩌면 사랑은 찰나의 순간에 우리에게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사랑인지

모를 때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흔히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한다. 내가 그를 사랑할 때는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도 있고, 반면에 그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는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듯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가 같은 시간에 같은 때에 사랑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첫사랑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상처를 남기고 영원한 기억 속의 잔상을 남게 만든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감정

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처음은 다 떨리게 마련인 것 같다. 어쩌면 수 많은 연애를 했을지라도 진정한 첫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첫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상흔을 남기게 되는 것일까?

분명히 나의 몸과 마음은 그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속절없이 끌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사랑 앞에서 우리 모두는 약자이다. 물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 많이 사랑한다고

해서 정말 약자이기만 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사랑의 약자는 바로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 사랑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다 쏟아 붓는다.

그래서 만약 그 사랑이 끝이 난다고 할지라도 그 당시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절대 후회함이 없게 된다. 최선을 다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랑을 받는 사람은 계속 사랑을 받기 때문에 강자였던 것이지,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이 자신의 곁을 떠나게 된다면 그는 그의 빈자리를

느끼게 되고 사랑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미련을 남게 된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 수록 그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평생을 그리움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을 받은 사람 또한 약자인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그것은 강인해보이는 사람이라도, 어른 같아 보이고, 현명해보고, 성숙한 인격을 갖춘사람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사랑은 나의 이성과 기존의 가치관의 틀을 완전히 깨어버리는 강력한 미지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랑이 당황스러운

것은 아마 외계인이 지구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과 같은 이질적이고 알 수 없는 낯선 감정의 혼란 속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물론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 음악, 미술, 그리고 문학들을 통해서 그 속에 나타난 사랑들을 간접적으로 경험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는

사랑은 내가 지식으로 알고 있던 사랑의 개념을 뛰어넘게 된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날마다

전전긍긍하던 나의 모습,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 신경을 쏟게 되며, 하루에도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천당과 지옥을 오고가는 들쑥날쑥한

감정들을 말이다.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확인하고 싶어하고, 그것을 원하지만 나의 감정을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오는 사소한 오해들로 인해서 상처를 받고 눈물을 쏟는 나날들, 이전에는 겪어 보지 못했던 감정의 극심한 소모를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이 모든 관계가 끝나버렸으면 싶은 마음, 그러나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고,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그런 마음들이 바로 사랑의 감정은 아닐까. 내가 이 감정을 그만 겪고 싶다고 마음먹는다고 멈춰지는게 아니기 때문에 사랑은 괴로운 것이다. 결국 사랑을 하게 되면 온전히 내 것이었던, 나의 마음이 내 것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나의 온 영혼을 그에게 주기 때문에 이미 나의 영혼은 내 것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나의 마음의 방까지 내어줄 수 있는 것, 나의 영혼의 밑바닥까지 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랑을 하든,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고 자유이다. 물론 어떤 사랑을 하던지 자유이지만, 그 사랑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두려워한다. 이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 결국에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니 말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 행복하고 알콩달콩한 사랑을 할 수 있고, 늘 그리워하며 사랑하기도 하고, 또 싸우면서도 사랑하기도 한다. 

만나지 못하고 평생 가슴 속에 담아두는 사랑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그 어떤 사랑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사랑을 할 때에는 아프고 그 고통으로 몸부림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그 열병같은 사랑의 폭풍이 지나고 나면 우리의 내면은 단단해진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사랑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눈으로 말이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성장시킨다.

어쩌면 사랑을 하게 되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진정으로 만나게 되는 여정일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모습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사랑에 빠졌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저 속절없이 끌리게 되는데, 왜 끌리는 것인지, 내 가슴은, 내 심장은 왜 그에게만 반응을 하는 것인지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알지 못하는 묘한 끌림을 느끼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되면, 그의 모습들 속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알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나에 대한 것이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나를 알아가게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어떤 것에 끌리게 되었는지, 그를 통해서 알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오는 사랑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설령 그 사랑으로 인해서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워서

사랑을 피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프더라도 그 사랑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 설령 부서지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그 사랑에 충실했던 우리는 결국 더욱 성숙하고 성장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분초를 다투거나 혹시라도 생명의 위험을 겪은 적이 있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철도 너머의 저수지에 텃밭을 가꾼적이 있었다. 거기에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아빠와 엄마께서 먼저 철도를 건너서 밭을 정리하셨고 나와 동생은 호미와 그 밖에 밭일에 필요한 여러 도구

들을 챙겨서 부모님의 뒤를 따라서 갔다. 그렇게 종종 걸음으로 철도를 넘고 있었는데 멀지 않아 기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너무 

당황해서 허둥지둥 철도를 지나갔다. 생각보다 철도는 길었고 철도를 건넜을 때는 가파른 언덕이었다. 나와 동생이 철도를 건넌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차는 우리의 등 뒤로 지나갔고 나와 동생은 거의 낭떠러지다시피한 그 곳을 위태롭게 붙잡고 있었다. 저 멀리서 그런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부모님이 보였다. 부모님은 우리를 향해서 소리치고 있었다. 괜찮냐고 말이다. 간신히 기차가 지나가고 나서 나와 동생은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낭떠러지를 조심스럽게 내려와서 부모님께 갔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런 우리를 처음에는 야단을 쳤지만 이내 다친 곳은 없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보셨다. 그 때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깝게 다가왔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것이 나에게 지속적인 두려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역시 나의 부모님 덕분이었다. 언제나 부모님은 내 곁에서 지켜주시기 때문에

그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온 공포는 금새 물러가게 되었다. 영화 스피드 역시 이런 내용과 마찬가지고 할 수 있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생명이 죽고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사소한 추억은, 내가 처음 스피드라는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을 한다. 그 때 우리 가족은 첫 부산여행을 앞두고 매우 설레어하고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잠이 들려고 하는 찰나에 나와 동생은 

잠이 오지 않아서 티비를 조금 보고 자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티비를 켰는데, 채널을 돌리다보니 우연히 외국영화가 방영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슨 영화인지 보자고 하면서 계속 보게 되었는데 어린 나와 동생이 봤을 때도 너무 재미가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주인공으로 나온 키아누리브스가

너무 멋있었다. 동생과 나는 그 자리에서 영화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끝까지 다보고 말았다. 내일이 부산여행 첫날인데, 영화가 너무 재미가

있어서 부산여행은 잊혀질 뻔한 추억이 있었다. 나의 어린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잭은 동료와 함께 엘레베이터 테러를 막은 공로로 훈장을 받게 된다. 그들은 경찰이고, 잭의 겁없는 행동으로 인해서 엘레베이터에 갇힌

시민들은 무사히 구출이 된다. 범인을 검거하려는 상황에서 잭의 동료는 부상을 입게 되지만 그로 인해서 범인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된다. 자신의 계획을 망친 범인은 잭에 대한 앙심을 품게 되고, 그로 인해서 버스 테러가 발생하게 된다. 버스는 바로 2525라는 버스로 범인의 조건은 바로 시속 50km를 넘었을 때

50km 이하로 달리게 되면 버스에 부착된 폭탄이 터지게 된다는 것이다. 수 많은 시민들이 버스에 탄 상황에서 잭은 그 버스 안으로 들어간다. 

버스기사의 부상으로 인해서 버스에 탄 애니라는 여성이 운전대를 잡게 되고, 잭은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방법을 강구한다. 범인은 바로 전직 경찰관으로 폭탄전문가였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을 치밀하게 꾸민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가지만 그럼에도 잭은 흔들림 없이 모든 상황을 침착하게 통제해나간다. 범인의 헛점을 이용해서 안전하게 승객들을 구출하였으나, 이에 분노한 범인은 잭을 옆에서 돕던 애니를 납치하게 되고

잭과 범인의 마지막을 향한 숨막히는 대결이 펼쳐지게 된다. 


이 영화는 내가 생각했을 때 아마 시대를 앞서나가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기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스토리라인과 긴박함

그리고 절묘한 액션들이 우리의 눈을 조금도 쉬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당시의 시대에 보았더라면 어쩌면 충격을 받을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서 본다고 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로 인해서 당시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은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목숨이 긴급한 상황에서 나도 남을 구하기 위해서 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나 자신에게 묻곤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서 희생을 할 각오를 한다는 것은 평소에

마음먹지 않고서는 될 수 없는 일이라 생각을 한다. 여름밤에 갑자기 찾아온 설레임처럼, 이 영화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내 마음 속에 남을 것 같은 예감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첫사랑이 있다. 누구나 가슴 속에 첫사랑을 품고 살아간다. 그 사랑이 열병처럼 아프게 한 사랑이든,

아기자기하고 풋풋한 사랑의 추억이든지 말이다. 그리고 그 첫사랑의 기억은 늘 우리 자신을 사로잡고 우리의 기억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나에게 첫사랑은 정확하게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첫사랑이라는 감정이 단지

누군가를 처음 좋아해본 느낌인 것인지 아니면 서로 좋아한 것을 첫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분명 나에게도 첫사랑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첫사랑은 대부분 짝사랑이었고, 나를 좋아하던 아이를 나중에 내가

좋아한 적도 있었다. 아무튼 사랑이라는 것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신비롭다. 여러가지 사랑에 대한 기억들이 있지만

주제가 첫사랑인만큼 어린 시절에 있었던 나의 이야기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교회를 다녔었다. 그 아이를 만난 것은 교회에서였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그 아이와 나는

동갑내기였다. 같이 교회에 다녔지만 처음에는 그리 친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 아이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고, 어떤 아이일까

라는 궁금함이 늘 있었지만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주일학교 예배가 끝나고 간식시간이 되면 언제나 초코파이와

요구르트를 먹었는데, 나는 초코파이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더 먹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면 말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항상 더 먹곤 했었다. 그 아이는 간식을 더 먹는 나를 놀려댔고 나는 그 아이에게 받아치고 서로 앙숙처럼 지내곤 했다. 

그러다가 그 아이가 교회에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서서히 내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에

그 아이와 나는 같은 반으로 배정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아이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다시 만난 우리는 처음에는 

멋쩍어했지만 시간이 좀 흐른 뒤 그 아이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에게 장난을 치곤했다. 늘 나를 괴롭히고 놀리던 그 아이,

그 아이와 같은 무리의 친구들은 그 아이가 나를 놀리자 같이 나를 놀리기 시작했고, 나는 언제나 그 무리를 피하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써야만 했다. 그렇게 매번 아이들이 많은 장소에서 나를 놀려대는 그 아이들이 싫어서 선생님한테 이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그것이 나에 대한 그 아이의 관심의 표현이었음을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수학여행에서 진실게임을

하면서 그 아이를 비롯해 패거리들이 나를 동시에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친구들 3명이 동시에 나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장난치기 좋아서 괴롭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나중에 알게 되고 나서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장난을 친 거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거의 학기 말을 향해

가고 있었고, 학교를 졸업해서 중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당시에 짝사랑하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6학년 때 처음으로 좋아하게 되어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도 그 아이를 좋아했으니까 2년 동안 짝사랑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내가 좋아했던 아이보다 나를 좋아했던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을까? 어떻게 살고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에 대한 궁금함들이 남아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아이만 나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나도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알지 못했을 감정들, 그것이 좋아하는 감정이었고,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느껴본 감정이라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줄리이다. 줄리는 매우 진취적인 소녀이고, 당당한 여자아이이다. 줄리가 어린 시절 이웃집에 잘생긴 한 남자아이가

이사를 온다. 줄리는 그 남자아이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그리고 이사를 온 그 아이를 돕기 위해서 다가가지만 그 남자아이는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줄리가 왠지 모르게 부담스럽기만 하다. 남자 아이의 이름은 브라이스, 잘 사는 중산층 가정에서 부족한 거 없이

살아가고 있는 브라이스는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다. 그런 브라이스에 애정을 학교에서도 숨기지 못하는 줄리는 언제나 적극적이다.

브라이스는 그런 줄리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이 챙피하다. 왜냐하면 전교에 소문이 다 나서 아이들이 놀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줄리는

그런 것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만 한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줄리를 떼어내기 위해서 브라이스는

일부러 학교 제일의 퀸카과 마음에도 없는 연애를 한다. 퀸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줄리를 떼어내려면 이 방법밖에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사귀게 된다. 그래서 줄리 앞에서 더 일부러 다정한 척 하고, 언제나 줄리를 의식하고 지낸다. 그러나 브라이스의 의도를 알게 된 퀸카는

브라이스에게 이별을 통보하게 되고, 그 모습을 보면서 줄리는 통쾌해하면서 이전보다 더 브라이스를 따라다니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줄리가 가장 사랑하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서 잘리게 되는 위기가 벌어지게 된다. 줄리는 사랑하는 

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혼자서 일인 시위를 벌이게 된다. 줄리로 인해서 공사가 지연되고, 결국 줄리의 아버지가 와서야 일이 마무리가 

된다. 사랑하는 나무를 잃게 된 줄리는 상심에 빠지게 되는데, 그런 줄리에게 아버지는 플라타너스 나무 그림을 그려서 줄리에게 선물을 한다. 

아버지의 그림을 받고 회복하게 되는 줄리는 자신이 부화시킨 병아리들을 닭으로 키워내고, 그 닭이 알을 낳게 된다. 6마리의 닭들이 알을

낳는 바람에 달걀이 차고 넘치게 된 줄리네 집은, 이웃주민들의 요청으로 이웃들에게 싼 가격으로 달걀을 팔게 된다. 줄리는 자신의 이웃인

브라이스네 집에도 달걀을 주기로 결심하게 되고 공짜로 매일 아침 달걀을 준다. 하지만 깐깐한 성격을 가졌던 브라이스네 집은 줄리네 집 정원이

지저분해서 위생적이지 못한 환경이라는 것을 빌미로, 달걀을 받지 않기로 얘기가 되고, 브라이스는 그런 사실을 줄리에게 직접 말할 수 없어서

줄리에게 받은 달걀을 몰래 쓰레기통에 버리게 된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그 사실을 줄리에게 들키게 되고, 줄리는 자신의 진심을 외면했던

브라이스에게 큰 실망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브라이스를 피하기 시작한다. 브라이스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줄리에게 다가가려고 하지만

줄기차게 브라이스를 피하는 줄리, 이제는 상황이 역전이 되서 브라이스가 줄리를 따라다니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피하고 외면하고,

더 이상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줄리의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줄리가 자신에게 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느 덧

자신이 줄리를 좋아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내용 전체를 전부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줄리라는 아이의 당당함에 나 또한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줄리네 집은 가난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동생이 지체장애를 앓고 있었고, 남동생을 돌보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줄리네 가족들은 힘들게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줄리의 부모님은 줄리가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늘 격려해주셨고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던 것이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고, 오빠 두 명과 함께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줄리는 절대로 기죽지 않고 늘 당당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절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행동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다른 또래 여자아이들과는 많이 달라보였지만 그것은 오직 줄리만이 가지고 있는 보석과 같은 점이었다.

반면, 브라이스는 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했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늘 끌려다니기만 했다. 하지만 줄리를 통해서 늘 용감하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는 줄리를 사랑하게 된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준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것 같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떠나갈 때야 비로소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 사랑인지를 깨닫게 된다. 왜 사람은 사랑이 떠나갈 때 그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사랑을 받을 때 더 고마워하고 배려하지 못하고, 왜 그 사랑이 떠날때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사랑은 미스테리이고, 늘 수수께끼와 같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 늘 깨지고 상처받고 아파하고, 눈물지으면서도

그 사랑의 고통 속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사랑을 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랑 속에서 무지개같이 빛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 무지개는 것은 내면의 힘을 말한다. 물론 화려한 겉모습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내면이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 말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무지개 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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